일본 역사 - 고분 시대

고대
고분 시대 
고분시대는 3세기 중 후반부터 7세기 무렵까지라고 이야기 되어 진다. 3세기 중반에 긴키 지방에 나타난 전방 후원분과 거기에 기반하여 급속히 열도 각지에 퍼져 있다. 그것은 기내 (야마토)· 북부 규슈 ( 치고 시 )· 북 관동 ( 모노 )· 산요 ( 갈비 )· 산인 ( 이즈모 )에 병립하고 있던 지역 정치 집단이 협력해 야마토 역사를 시작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초기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에는 없고, 역사의 연합(연합역사)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되어 있다. 이 역사가 나중에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어 게다가 야마토 조정이라고 불리는 정권으로 발전하지만, 어느 시기 이후로 조정이라고 부를 것인가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있다.
4세기 후반부터 야마토 역사는 열도 주요부의 지배에 힘쓰는 동시에 무기·농구의 재료인 자원을 찾기위해 한반도 진출을 시작해 반도 국가의 국제 정서에도 개입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조선이나 중국의 기술과 문물이 왜국으로 들어가기 시작되었다.신라와 고구려는 계속해서 전쟁을 반복했습니다.

5세기에 들어서자 야마토 역사는 한반도 제국과의 관계를 우위로 조공 함으로써 그 목적에 어울리는 관작을 찾아 중국 남북과 통교를 하러 활발히 갔다. 그쯤 무렵부터, 대왕이나 치태시다 대왕이라고 칭하게 된다. 또 한반도에서의 세력 확대를 생각하도록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던 중국의 왕조에 대한 조공도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의 전방 후원분은 특히 규모가 거대화되어 강력한 역사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사서에 이름이 남는 이 시기의 야마토 역사의 수장을 왜의 우왕이라고 한다.
왜의 우왕 최후의 왜왕 무에 현시점에서 정해지고 있는 것은, 소오도리 세 유 부존(오 하츠에 알 수 있는 것)이며 천황 (470년경)과 인물이다. 

 우왕 후,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야마토 역사에서는 혼란이 보였다. 그러나 호쿠리쿠·오미네 거지의 방계 왕족으로부터 즉위한 계체 천황의 등장과 통치에 의해 야마토 역사의 열도 지배가 강해지고, 이후 현 천황으로 이어지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더불어 천황가에는 기타큐슈에서 반의 난 등 있지만, 야마토 역사와 기타큐슈 호족반 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명의 점이 많다.

이 시대(경우에 따라 다음 아스카 시대를 포함하여)를 야마토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지만, 현재는 고분 시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내향적인 시기를 거쳐 야마토 역사에 의한 일본 열도 지배 체제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 같은 시기에 오호츠크해 연안 지역에서는 오호츠크 문화가 성립하여 약 13세기까지 이어졌다. 또 이 시대에는 한반도 제국의 국제관계 개입은 크게 후퇴했다. 


아스카 시대 
6세기 말부터 8세기 초까지는, 야마토 조정의 본 거가 주로 아스카에 놓인 것으로부터 아스카 시대라고 불린다. 6세기 후반에는 조정의 국내 지배가 안정되어 오히려 조정 내부 대왕의 계승 항쟁이 두드러졌다. 6세기 말 400년 만에 중국을 통일하고 등장은 동아시아 국가의 정치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왔다. 왜국에서도 7세기 전반에 걸쳐 천황과 그 토 왕( 성덕태자 )이 왕실인 소 가마 자를 견제하면서 대왕(천황) 주권을 확립하려고 했다. 이 시기에는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하여, 후의 아스카 문화 · 백봉 문화 등의 불교문화로 발전해 갔다. 불교 · 유교 · 도교 등의 책이 들어온 것으로 요즈음부터 문자의 사용이 보급된다 .
 제1차 송수사 파견의 반성에서 관의 12층 제정· 17조 헌법 도입 등 국정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호족층의 저항도 뿌리 깊고, 권력 집중화는 그 후에도 기획되었지만, 그 움직임은 뻔뻔했다. 제2차 송수사에서는 오노 여동생 중국의 황제 열지에 친서를 건네주었다. 그 친서에는 「일출하는 나라의 천자보다 일이 몰리는 나라의 천자에게」라고 있어, 어디까지나 조공 외교의 틀 내에서는 있었지만, 중국과 책봉을 받지 않고 자립한 군주이다 인정함으로써 자주성을 나타내는 의도가 있었다... 일본이라는 국호도 대호 율령 제정 전후에 정해져 후지와라에 도성, 다이로 이후에는 원호도 정착했다. 천무 천황의 사위에 기초하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 사료가 되는 ' 일본서기'의 편찬이 개시된다.

7세기 중반의 대화의 개신 도 권력 집중화의 움직임의 하나이며, 일정한 진전을 보인다. 그러나 권력 집중화에 대한 가장 큰 계기는 7세기 후반의 백제 부흥 전쟁에서의 패배(→ 시라무라에의 싸움 )이며, 왜국 내 제 세력은 국제 정비를 진행함으로써 일치하고 권력 집중화가 빠르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임신의 난에 승리한 천무 천황은 권력 집중을 철저히 하여 천황의 신격화를 도모했다. 천황 호의 제정 시기는 천무기로 여겨진다. 아울러 천황 지배를 구현화 하기 위해 율령에 도입을 추진해 8세기 초의 대보 율령 제정에 결실했다
덧붙여 이 시기 홋카이도 중 서남부· 아오모리현 북부에 있어서는 창문 시대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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